늦은밤의 여성 안전 문제를 해결했던 선조들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전국민이 공포에 떨며 안전 문제가 이슈가 된 가운데 되짚어볼만한 조선시대의 통행금지제도가 있다.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I.B. Bishop)의 책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1987)'은 비숍이 조선을 방문했을 당시 한성(서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해질 무렵 종이 울리고 사대문이 닫히면 거리는 조용해지고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시각에는 '여성들만이 외출이나 산책을 하며' 어두워진 거리의 정적을 가루고 있다. 혹 잘못해 이 시간까지 거리에 남아 있게 된 남성은 최대한 여성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며 귀가를 서둘러야한다. '이때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남성은 엄벌에 처해진다"
비숍이 우리나라에 왔을 당시 한성은 밤이 되면 남성들은 통행이 금지되고 여성들에게만 외출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당시 조선을 방문한 다양한 외국인들에게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1895년에 통행금지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간에 남성의 통행을 금지시키는 제도는 단순히 낮에 여성들이 잘 돌아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비숍은 "거리에서 남자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이 제도는 때로 폐지된 일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꼭 사고가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폐지되었던 제도는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었다"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남성들이 밤에 다니면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남성들의 통행을 금지시켰다는 것.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 안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남성들이 주위 여성들에게 "그러니까 밤에 돌아다니지마"라고 말하게 되는 요즘,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여성들'이 아닌 '위험을 일으키기 쉬운 남성들'의 통행을 금지시킨 조선시대의 통행금지제도가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남성의 통행을 금지시켜 늦은 밤 여성 안전 문제를 해결한 선조들의 이 방법을 오늘날엔 쓸 수 없겠지만. 그 명쾌함이 신선하고 충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