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루마니아에서 극단적인 해결책으로 내세웠던 '낙태금지법'의 처참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960년대에 유럽 여러 나라들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각국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일자리 증대, 출산지원금, 교육기관 확충 등 대부분의 국가는 출산을 '장려'했다.
하지만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는 달랐다.
그는 "강제로 아이를 낳게 하자"는 위험한 생각을 직접 정책으로 시행해 충격을 주었다.
먼저 피임과 낙태를 전면 금지했다. 피임 도구를 사거나 낙태 수술을 하면 사형당하거나 중형에 처해졌다.
또 1가정당 자녀를 4명 이상 의무로 낳게했다. 아내의 배란일에 맞춰 성관계를 하지 않은 부부는 엄청난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야했다.
그러면서 월경 경찰 제도를 두어 여성의 임신 회피 여부를 수시로 검사하고 산부인과 검진을 강제로 받게 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시 평균 연봉의 30%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는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불임이나 건강상 아이를 갖기 힘든 장애인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이런 강력한 정책에 출산율은 1년만에 1.9명에서 3.66명으로 2배 가까이 치솟아올랐다.
이 소식에 차우셰스쿠는 "내 생각이 맞아떨어졌다"고 기뻐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육아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루마니아에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배우지도 치료받지도 못했다. 가난하고 병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가버렸고 아이들은 길거리를 헤매거나 고아원에서 가축처럼 길러졌다.
1년 사이 유아 사망률이 145%나 증가해 강제로 태어난 아이들 절반이 죽었다.
또 에이즈 등 성병과 각종 전염병, 정신질환 발생률이 계속해서 올랐고 어마어마한 비출산 세금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루마니아는 불과 2~3년 사이에 파탄에 이르렀지만 차우셰스쿠는 "유아 사망률이 높으니 앞으로 생후 한달이 지난 아이에게만 출생신고서를 발급하라"며 수치에만 신경썼다.
루마니아 정부는 아이를 낳으라고만 했지 아이들을 책임질 여력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1966년부터 1989년까지 23년간 행해졌던 이 극단적 출산 정책으로 만들어진 '잃어버린 세대'는 결국 시위를 주도해 차우셰스쿠를 끌어내려 사형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준비되지 않은 국가가 출산의 부담과 책임을 국민에게만 떠넘길 때 벌어지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진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