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출두요~!!!"
혼비백산해서 숨을 곳을 찾는 탐관오리를 벌하는 암행어사의 이 대사는 억울하고 힘들게 살아온 민초들을 위로하는 위대한 힘이 있다.
그러나 전국의 탐관오리를 벌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암행 관리의 대명사인 '암행어사'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문수는 암행어사가 아니라는 것.
어찌된 일인지 한번 알아보자.
조선시대에 실행된 어사 제도는 약 400년 간 지속됐고 총 670명 정도가 활약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왕의 특명을 받고 비밀리에 특수 임무를 위해 파견된 '암행어사'과 달리 상당수가 공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별건어사'로 파견됐다고 알려졌는데, 어사 박문수는 바로 이 별건어사였다는 것.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박문수는 1727년 9월 25일부터 이듬해 4월 14일까지 약 6개월간 ‘영남별건어사’로 활동했다.
별건어사는 주로 흉년에 굶주린 사람들을 보살피거나 양역(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 장정에게 부과하던 공역)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오히려 암행어사로 활동했던 유명 인사들인데, 추사 김정희,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등이 암행어사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어사 박문수'전의 내용은 사실이 아닌 창작이라는 것.
그럼 실제로 이 특수 임무를 맡은 스페셜 에이전트인 암행어사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은밀하게 활동하고 극적인 감찰 업무를 수행했을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고 한다.
어사제도에서 활동했던 어사들은 사헌부(지금의 검찰청) 소속으로 활약했으며, 임기가 정해져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사헌부가 후보자를 뽑아 왕에게 올린 후 거기서 선발되었기 때문에 암행어사의 활동 루트는 사전에 누설되어 감사가 진행될 곳에 전달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실제로 암행어사가 감찰을 진행할 경우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즉, "사헌부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암행어사의 신분을 밝힌 후 감찰 업무를 진행했다는 것.
다만, 감찰 업무를 진행하기 전에 주변 정보를 미리 파악하는 등의 은밀한 자료 수집 활동을 하긴 했지만 '어사 박문수'전에 나오는 것처럼 성대한 파티를 열고 있는 탐관오리의 파티장에 난입해서 싹쓸이는 하는 등의 극적이고 통쾌한 장면은 실제로 기록된 바가 없다.
마치 오늘 날에 지방 공공기관에 가서 "검찰에서 나왔소!"라며 신분증을 손에 들고 큰소리를 치면서 동행한 비밀 요원들이 비리 공직자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식의 감찰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
오히려 암행어사에게는 정치보복과 협박, 암살 등의 위협이 존재했다고 알려졌다.
대부분의 탐관오리들은 암행어사를 대상으로 뇌물 등 다양한 포섭활동을 전개했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는 성문을 닫아 못들어오게 막거나 심지어 협박 및 암살 등을 시도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
그리고 가장 흔한 것은 정치보복으로 실제로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은 암행어사 시절 자신들이 처벌한 관리들의 정치보복으로 귀양살이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저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공직자들의 비리를 벌하고 억제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했고 대부분 국가에 충성을 다했던 모범적인 인물들을 기용했던 고생스러운 공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