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KBS2 월화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에서 수학 교사 오만상(배우 인교진)이 이정희(배우 보나), 심애숙(배우 도희) 등을 수치스럽게 벌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오만상은 학생들에게 칠판 앞에 나와 수학 문제를 풀도록 지시했다. 박혜주(채서진), 귀자(이봄) 등은 재빨리 문제를 풀고 들어갔다.
이후 오만상은 문제를 다 풀지 못한 학생들을 교탁 앞에 서게 했고 "야, 이 개, 돼지만도 못한 가스나들아, 여 박혜주가 푼 거 봐라, 이거 하나의 예술작품 같지 않나. 똑같이 밥을 처먹으면서 되게 다르노"라고 꾸짖었다.
이어 문제를 다 풀지 못한 학생들의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는 체벌을 시작했다. 오만상은 "준비하시고"라고 말했다. 첫 순서인 이정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박혜주가 일어나 "그런 벌칙은 하지 말아주면 좋겠습니다"라며 "선생님께서 저희를 바르게 지도하려는 건 잘 알겠지만, 여학생의 속옷을 이용한 벌칙은 해당 학생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입니다"라고 항의했다.
이어 "수치심을 주는 벌칙이라면 그것은 벌칙을 넘어선 이해할 수 없는 폭력 아닐까요?"라고 덧붙였다.
오만상은 처음엔 "뭐라? 수치심? 폭력?"이라며 정색했지만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태도를 바꿔 "박혜주 학생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럴 수 있다"며 체벌을 중단했다.
이 외에도 '란제리 소녀시대'에는 이정희가 미팅에 나갈 때 언니의 보정속옷을 훔쳐입었던 에피소드와 '노는' 여학생들이 입고오는 끈 달린 민소매속옷을 부러워하는 내용 등 속옷에 관한 내용이 펼쳐진다.
이렇듯 속옷에 관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드라마라 '란제리 소녀시대'인가 싶지만 사실 '란제리 소녀시대'의 뜻은 따로 있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1970년대 후반 대구를 배경으로 살았던 여학생들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김용희 평론가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소설 후반부에는 "이미 세상이 만들어놓은 지도 위에서 여자들이 단단하게 몸을 감싸고 다시 그 몸을 찢는 일들이 되풀이되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투명하고 얇은 막 같은 것 말이다. 란제리처럼 몸을 보호하던 것이 오히려 몸을 조여 오는 것 말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제목의 '란제리'가 뜻하는 바를 암시한다. '란제리'는 여성을 지킨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여성을 속박하는 악습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으로 가족법이 개정돼 법정 상속에서 아내와 미혼 딸의 비율이 높아지고 친권을 아버지, 어머니가 공동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또 '여성학'이 최초로 대학 교과 과목으로 채택되고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 최초로 여성 지부장이 탄생하는 등 여성 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개를 든 시기이기도 하다. 1975년에는 결혼 후 퇴직을 강요당한 은행 여직원이 "내 손으로는 사표 못 쓰겠다"며 들고 일어나 은행의 결혼퇴직제 폐지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1970년대는 여전히 억압적인 시대였다. 극중에서 정희 어머니는 정희에게 "여자는 찬 데 앉으면 안 된다. 밤에 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하고 질막(처녀막)이 손상될 수 있다는 이유로 자전거도 타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구시대의 그릇된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 드라마화되면서 사춘기 소녀들의 우정과 달콤한 첫사랑에 더 집중하는 이야기가 됐다.
70년대 후반을 돌아보는 복고감성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 원작 소설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감상한다면 재미는 물론 의미까지 더해지는 시간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