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목숨을 담보로 한 엄청난 용기를 내 남측에 내려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27일 일본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3월 말부터 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배포한 강연자료에서 "원수님(김 위원장)이 38선을 넘어 남측에 내려 걸어간다"면서 이는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칭찬했다.
다른 북한 관계 소식통 역시 북한이 김 위원장이 군사경계선을 넘어 판문점에 가는 것에 대해 "인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혼자서 남측에 가신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을 단순히 맹목적으로 칭송한 게 아니며 정황상 김 위원장이 큰 용기를 낸 게 맞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됐던 판문점 남측 구역은 UN군 사령부 관리 하, 즉 사실상 미군의 통제 지휘를 받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국군은 물론 미군 측으로부터 사살될 수도 있는 가능성까지 모두 감수한 채 진짜 '목숨걸고' 내려왔다는 주장이다.
물론 사전 실무회담에서 이런 신변 안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충분히 한 상태에서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그렇다 해도 폐쇄적 국가인 북한 최고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적국인 미군이 관할하는 남한 군사구역을 밟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위험한 상황. 현실적으로 최악의 돌발 상황을 우려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 당시 이런 불안한 심리를 감출 수 없었다.
처음 판문각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김 위원장은 정장 차림의 수많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거의 가려진 채 등장했다. 경호원들은 사방을 경계하며 각 잡힌 동선으로 철통 경계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다 군사분계선에 거의 다다르자 김 위원장은 경호원들을 물러나게 하고 혼자 걸어왔다.
두세발자국 정도 거리 뒤에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뒤따르긴 했지만 그야말로 사방이 뚫린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진 김정은 위원장.
김 위원장은 주변을 살피고 허공도 둘러보며 잔뜩 긴장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처럼 저격수가 마음만 먹으면 남측 구역 건물에서 충분히 김 위원장을 조준하고도 남을 각도와 거리였다.
김정은 위원장을 7년간 연구했다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임문수 연구소장은 "계단에서 내려와서 평지까지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어떤 스트레스나 위험이나 뭔가 불안함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순간도 잠시 군사분계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자 김 위원장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문 대통령과 가까이 접해있는 위치라면 위험요소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그런 김 위원장에게 "큰 용단을 내셨다"고 화답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그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이후에도 회담 내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큰 용단을 내렸다"고 여러번 고마움을 표했다.
이는 북측으로서는 다양한 위험 변수가 있는 걸 알면서도 정상회담에 나선 김 위원장이 진심으로 용기를 낸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무방비로 긴장의 끈을 늦추지는 않는 철저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김 위원장은 방명록에 이름을 쓸 만년필 한 자루까지 직접 준비해왔고 도보다리 벤치에 마련됐던 물 한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용변도 회담장 내에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해결하지 않고 북에서 가지고 내려온 전용 화장실을 사용했다.
이는 생체 정보 유출이나 독살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며 최소한의 위험 요인이라도 기피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거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나왔다.
그런 관점에서 밤에 진행됐던 환송행사는 굉장히 이례적인 행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건물 외관에 빛으로 영상을 비추는 식이라 공연 전 암전이 되며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만큼 캄캄해진 상황. 그리고 이 어두움은 예상보다 더 길어졌다.
평범한 행사였다면 공연을 관람하기 전 으레 있는 상황이려니 했겠지만 이 자리는 북한 최고지도자가 실내도 아닌 사방이 트인 외부에서 누가 언제 어디서 기습해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노출된 것이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한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이 서로 믿음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불이 꺼졌을 때 현장 분위기는 짜릿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례적인 상황은 사전에 우리 정부와 문 대통령 측이 끊임 없이 신뢰감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과 남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캄캄한 외부에서 거의 무방비 상태로 환송행사를 맘놓고 즐기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임 연구소장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보기 드문 모습을 보였다"며 "악수를 하고 웃음을 지으면서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는데 이런 모습은 시진핑 주석이나 다른 정상들과 만날 때 절대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해석했다.
이어 "아마 김 위원장의 무의식 속에서는 마치 집안의 어른이나 마찬가지로 존경심이나 존중함이 내재돼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런 분석에 누리꾼들은 "그저 국가 정상들끼리 만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정말 많은 국가들의 이해와 위험이 얽힌 상황이었다", "반대로 문 대통령이 북한에 간다고 생각하니 손에 땀이 난다", "난 몰랐는데 어른들은 저러다 누가 총이라도 쏘면 어쩌려고 저러냐는 걱정을 하더라" 등 김정은 위원장의 용기를 인정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