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만든 장본인이 오히려 "수능을 폐지하자"고 말한다. 왜일까?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초대 원장이자 수능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박도순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명예교수가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박 교수는 23일 한겨레와의 영상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박 교수는 수능이 만들어지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수능 이전에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예비고사(1969~81) 또는 대학입학학력고사(1982~93)가 있었다. 하지만 암기만 강요하는 시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수능이 탄생했다.
당시 박 교수는 수능의 개발 과정에 참여해 이를 완성시켰다. 박 교수는 찍어서 맞출 수 있다는 객관식 시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5지 선다형을 도입했고 영어 공부를 오래 해도 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어 교육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듣기평가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제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필검사, 선다형 검사가 가진 한계가 크다"라면서 수능에 대해 "사람들은 점수에 대한 미신이 있다. 수능은 측정 오차가 크기 때문에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지금 수능의 모습은 처음 도입 취지와는 99%가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의 회상에 따르면 수능은 지금처럼 점수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갈 정도의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만점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는 것. 지금 수능은 처음 의도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수능을 비롯한 각종 시험들이 학생의 능력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험이 무엇을 재고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학력을 잰다고 하더라도 학력의 아주 작은 한 부분 밖에 재지 못한다. 아무리 시험이 발달해도 그럴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능 점수에 대해서도 "통계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390점 받은 사람이 380점 받은 사람보다 우수하다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안다"라면서 "대학에서도 점수 몇 점 차이가 능력의 차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눈 감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특히 "현재 사회상과 대학의 성격을 본다면 지금 같은 수능은 할 필요가 없다"라면서 "전국 단위로 학생들의 등수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수능은 대학의 서열화를 심화시킨다. 이럴 거면 차라리 원래의 적성검사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