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 귀멸의 칼날 국내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영화 '무한열차' 편이 그렇고 비슷한 시기 TV판 1기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며 '일본에서 왜 그렇게 난리였나'란 의문에 수긍하는 의견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애요.
그래서 오늘은 귀멸의 칼날 초반부에서 가장 임팩트가 강한 장면으로 꼽히는 '히노카미 카구라'를 집중 해부해볼까 합니다.
액션 자체가 멋지죠. 눈이 즐거운데다가 큰 감동까지 줬던 씬이라 이 장면을 여러번 되돌려봤는데 그러다 보니 의외의 떡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이 떡밥, 사실 귀멸의 칼날 원작의 메인 스토리를 꿰뚫고 있는 떡밥인지라 이 부분을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앞으로 공개될 2기, 3기 애니를 보다 잘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그럼 영상 먼저 살짝 볼까요.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가 '히노카미 카구라'를 외치며 싸우는 장면은 십이귀월 하현5 루이와의 전투씬입니다. 혈귀인 여동생 네즈코가 위협을 받고 있는데다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실감하던 절망적인 순간이었죠. 루이의 혈귀술이 펼쳐지고 탄지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자 일순간 머릿속에 주마등이 스쳐갑니다. 이렇게 표현된 주마등은 귀멸의 칼날 스토리 전개를 위한 여러 단초들을 제공하는데 일단 여기서는 탄지로가 어린 시절 아버지 카마도 탄쥬로와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탄지로 집안 대대로 전해져내려오던 '히노카미 카구라' 의식과 그 호흡법이죠. 그리고 아버지는 탄지로에게 '히노카미 카구라' 의식과 이 의식의 상징과 같은 귀걸이를 후대에 계승해달라고 마치 유언처럼 남깁니다.
그렇다면 '히노카미 카구라'의 뜻은 무엇일까요. 해석 차이가 있는데 먼저 히노카미는 '태양신, 불의 신' 정도로 해석 가능하고 카구라는 '신에게 바치는 춤' 정도로 풀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단 번역 판에선 '불의 신'으로 해석했으며 적어도 극 초반의 탄지로 또한 '불의 신'으로 믿었던 듯합니다. 어쨌든 불의 신에게 바치는 검무 의식이 탄지로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왔다는 얘기겠죠. 단순히 동작 뿐만이 아니라 호흡법 또한 계승되었으므로 탄지로의 아버지 탄쥬로가 병이 심하게 들어 몸이 정상이 아님에도, 또 폐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날씨에도 카구라 춤을 절도있게 출 수 있었다라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버지 탄쥬로는 탄지로에게 "히노카미가 되어라"라는 말을 했는데 이 춤이 단순히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를 벗어나 본인 스스로 신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검무를 펼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네즈코를 빼앗길 수도 있었던 그 다급한 순간, 주마등을 통해 '히노카미 카구라' 춤을 본 탄지로가 이를 검술로 응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엄청난 변화가 생기죠. 각성해서 루이와 대등한 승부를 펼치게 됩니다. 먼저 검기라고 해야 할까요. 이게 물에서 불로 바뀝니다. 이어 '원무'라고 외치는데 이는 춤이 아닌 검술 '히노카미 카구라'의 기본형인 제 1형입니다. 그리고 곧 나오겠지만 바로 '해의 호흡' 제 1형과도 동일합니다. 탄지로는 이어 "물의 호흡에서 히노카미 카구라 호흡으로 억지로 바꾼 반동이 온다"라고 말하는데요. 그만큼 체력적인 소모가 큰 검술이므로 데미지를 더 입기 전에 루이를 치겠다는 각오를 피력합니다.
자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이 '히노카미 카구라'는 대체 누구로부터 또 어떻게 계승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탄지로의 조상인 카마도 츠미요시가 당대 유명한 검객이었던 츠기쿠니 요리이치의 검술과 호흡을 보고 따라해서 춤으로 바꿔 전승했습니다. 이는 탄지로가 살았던 시대보다 400년 앞서 벌어진 일이죠. 원작 막판에 이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동작은 원류와 거의 같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어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요리이치라는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요. 쉽게 설명하면 귀멸의 칼날 세계관 최강자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해의 호흡'을 통해 400년 전, 그러니까 최초의 오니이자 귀멸의 칼날 빌런 끝판왕 키부츠지 무잔을 크게 위협했던 유일한 인물입니다. 무잔은 요리이치와 대결에서 '빤스런' 했고 그가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설명이 있죠. 그리고 요리이치 사후 무잔은 그같은 검사가 또 나타날 것을 두려워해 '해의 호흡'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해의 호흡'과 관련된 검술은 그 계보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죠. 일례로 '해의 호흡'을 사용하는 검객의 일륜도는 검은색으로 변하는데 이 때문에 일륜도가 검은색인 검객은 출세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귀멸의 칼날 세계관에 생기기도 합니다. 덧붙여 극장판 무한열차편에서 죽은 염주 렌코쿠 쿄쥬로의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기록에 의거해 탄지로는 본인이 알던 '불의 호흡'이 아니라 '해의 호흡'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됩니다.
정리하면, 요리이치 사후 대가 끊긴 것으로 알려졌던 '해의 호흡'은 '히노카미 카구라'라는 춤, 검무의 형태로 탄지로 집안에서 은밀히 전승되고 있었고 이후 탄지로가 바로 '히노카미 카구라'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해의 호흡' 13형을 차례차례 습득하면서 귀멸의 칼날 빌런 끝판왕 무잔을 쓰러뜨린다라는게 원작의 주요 스토리입니다.
자, 어떠셨나요. 사실 귀멸의 칼날 '히로카미 카구라'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멋진 검술이구나 했었는데 이런 심오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었네요. 또 하나하나 떡밥을 회수하다보니 귀멸의 칼날의 여러 설정들이 꽤나 치밀하고, 일각의 비판과 달리 결코 허투로 짜여진 것은 아니구나라는 점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색이 짙다', '제국주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우려하시는 분들도 많은 줄 아는데 글쎄요. 이 정도도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문화적 수준이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귀멸의 칼날, 오펀은 추천합니다.
[사진] 귀멸의 칼날 스틸컷, 영상 오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