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한 지 약 3개월만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한국에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나와 논란을 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18일 한국의 국방력, 한미동맹의 성격, 동북아 정세 등이 아프간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마크 티센은 지난 16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SNS) 트위터를 통해 "만약 한국이 이처럼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미국의 도움 없이는 금세 붕괴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방부가 올 2월 발간한 '국방백서 2020'에 따르면 상비 병력에서는 북한이 우리 국군보다 2~3배 많고 야포와 방사포 등 일부 전력도 양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첨단무기 분야에서는 우리 군이 북한군을 압도하고 있다는 게 국방부의 평가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 등 비대칭 전력을 감안할 때 미군 주둔 자체가 갖는 '억제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아프간 정부군의 경우 탈레반 반군보다 병력과 장비 면에서 우세했지만, 미군이 철수하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급료를 받는 아프간 군인은 30만 명에 달했다. 이에 반해 탈레반의 핵심 전투대원은 6만 명 수준, 탈레반을 추종하는 지역 무장단체 대원과 지지자들을 포함해도 20만 명 정도로 추산됐다.
장비 측면에서도 아프간 정부군이 우위였다. 미국은 아프간군을 독자적으로 싸울 수 있는 군대로 키우기 위해 지난 20년간 830억 달러(약 100조 원)를 투입한 바 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프간 정부군 숫자는 부패한 군경 간부들이 급료를 빼돌리기 위해 만들어낸 '유령군인'이었고, 내전이 발발하자 정부군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체계가 잡혀있는 우리 군과 아프간 상황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우리 군의 타격 능력을 비롯해 상비 병력의 전투력 등은 충분하지만, 정보감시정찰과 군수지원 능력이 부족하다며 아프간 상황을 단순히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우리 군의 정보감시정찰 능력은 심각하게 떨어진다"며 "향후 미군과 정보자산을 계속 공유하겠지만,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앞서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정보 자산을 얼마큼 빨리 잘 판단할 수 있는가가 앞으로 남은 과제"라고 설명했다.
군 안팎에서는 연이은 한미훈련 축소와 3년째 실기동훈련(FTX)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 따른 연합대비태세 약화 우려도 제기된다. 우리 군 당국은 올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한미훈련을 도상훈련(CPX)로만 진행했다.
같은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 미국과 일본은 앞서 2월과 3월 함께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우리 군 당국의 실기동훈련 제한은 사실상 '북한 눈치 보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북한은 한미훈련 '사전연습' 격인 CMST 실시 날짜(10일)에 맞춰 연이틀 비난 담화를 냈고, 우리 정부는 이를 의식한 듯 올 하반기 한미훈련을 '최소 규모'로 진행했다. 여기에 북한은 지난 2018년 이후 꺼내지 않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한미관계를 이간질하려는 듯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한국과 아프간의 가장 큰 차이는 군사력을 넘어 미국과의 관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프간의 경우 미국이 점령군을 파견한 것이지만, 한국의 경우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동맹군의 자격으로 파견하고 있다.
만일 미국이 이번 아프간에서처럼 임의로 주한미군을 철수할 경우 한미 간 외교단절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기에, 아프간과 유사한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아프간에서 군대를 철수한 배경과 관련해 대중견제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과제가 하나 생긴 셈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동북아 정세 관리에 집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이 대중견제를 비롯해 북핵 억제에도 여전히 신경쓰고 있는 만큼 한국을 주요 교두보로 계속 활용하기를 원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양 교수는 "미국이 대중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서 한반도라는 주요 거점을 쉽게 포기할 리 없다"며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론적으로 한미동맹과 한반도 정세를 안정화하기 위해 미국이 우리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게끔 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며 한미훈련 등에 있어 남북관계를 우선시하는 모습은 이러한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국방부 제공, BBC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