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테크노밸리 입주사에 다니는 이민호씨(가명·39)는 만 스무살 당시를 기억한다. 그해(2002년) 12월 고졸 출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노 대통령을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실제로 상하수직이 아닌 쌍방향 소통을 하는 인터넷 세대의 큰 지지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한일 월드컵이 열렸고 다음달 한국 국가대표팀은 4강 진출에 성공한다. 스무살 이씨는 '4강 진출 신화'에 열광했고 '쌍방향 소통'을 추구했으며 '탈권위적' 대통령의 선출을 목도했다.
이씨는 "성인이 된 후 우리 세대는 '할 수 있다'는 자의식이 충만해 주체적인 삶을 지향했다"며 "어린 시절 고액 과외를 받고 남 부끄러울 것 없이 '귀한 자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자신감도 넘쳤다"고 말했다.
◇"이만 퇴근합니다"
약 한 달 뒤 마흔살이 되는 이씨의 고민은 밥상머리에서 시작된다.
'자장면이냐, 짬봉이냐' 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함께 식당을 가면 기성세대인 상사가 원하는 음식과 1990년대생인 후배가 먹고 싶은 음식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씨가 초년생일 때만 해도 상사가 정한 음식으로 통일했다. 그러나 90년대생 후배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두 세대의 엇갈린 의견을 조율해 합의점을 제시하는 게 이씨의 역할이다. 그는 그러나 "알게 모르게 상사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가 많다"며 "중간에 끼어 있지만 스스로 '꼰대가 되고 있구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씨는 "제 또래는 자기 계발과 승진 등 조직 내 뚜렷한 목표를 설정했다면 90년생들은 코인이나 주식 투자 등 조직 바깥의 영역에서 목표를 잡는다"며 "방향과 목표 설정 과정이 다른 아래 세대보다 위 세대에 더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이씨와 같은 나이인 김창호씨(가명)는 후배들에게 "나는 꼰대다"고 선언했다.
김씨가 속한 유통기업은 업계에서 수평적인 문화로 유명하다. 팀 내 서열 세 번째인 김씨는 그 점을 회사의 장점이라 했지만 위계 질서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퇴근 시간이면 김씨는 '라떼는 말이야'(나 막내일 때는 말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과거에는 팀장이나 실장이 업무 중이면 5~10분은 앉았다가 퇴근했어요. 그러나 요즘 친구들은 퇴근 시간 딱 되면 '들어가 보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지요."
선후배들과 함께 모인 자리라면 난감한 일이 또 있다. 상사는 '김광석' 얘기를 하고 후배는 'B.T.S'(방탄소년단) 얘기를 한다.
자신은 누구를 얘기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후배들에게 좋아하는 연예인을 설명하면 "그게 누구예요. BTS가 최고다"는 답이 돌아온다.
김씨는 "제 또래 1980년대 초·중반생까지 MZ세대로 포함한다고 하지만 한참 잘못된 규정 같다"며 "90년대생인 막내급 후배들과 10살 이상 차이는데 어떻게 같은 세대가 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MZ세대란 말 적절한가
대학 강사인 홍진호씨(가명·39)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홍씨와 또래는 노동·인권을 사회 구조적 문제와 연결해 인식했다. 반면 90년대·2000년대생들은 사회와 분리해 개인적 문제로 노동·인권을 규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홍씨는 "이른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생)는 운동권이나 데모란 개념을 사실상 인지 못하고 있다"며 "촛불시위 등에도 놀이 개념으로 참여했다는 학생이 적잖았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한데 묶는 MZ세대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민호·창호·진호씨 등 밀레니얼 앞자리에 있는 80년대 초반생은 Z세대들에게 세대 차이를 느끼기 때문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생인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생인 Z세대를 합친 말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느 세대든 젊음의 정점에 있을 때 혁신적으로 불리지만 저출산·취업난이 맞물리면서 MZ세대는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문제는 (80년대 초·중반생처럼) 세대 전환기에 있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면 MZ세대 안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민호·창호·진호씨 같은 80년대 초·중반생 남성들은 여성 차별에 시달렸던 '82년생 김지영'과 달리 사회적 약자군으로 평가받은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기득권이라 하긴 어렵다. 부동산 등 노후 대비 문제엔 불안감을 느끼는 사례가 적잖아서다.
외국계 회계법인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민경호씨(가명·39)는 "나름대로 고액 연봉자라 할 수 있지만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내 집 마련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노후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했다.
내년 3월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가 공략하려는 MZ세대는 사실상 Z세대에 치중돼 세대 전환기에 있는 80년대 초·중반생 '낀 세대'는 소외감을 느낀다는 분석도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교 교수는 "19세부터 30대 초반까지는 사회적으로 어디에도 빚진 것이 없고 휘발성도 강해 특정 진영에 매몰되지 않는다"며 '부동층'이라고 봤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윤 교수는 "반면 30대 중반 이후 밀레니얼 세대는 비교적 뚜렷한 가치 판단을 확립해 지지 후보를 바꿀 가능성이 크지 않다. 정치권의 구애를 받지 못하는 이유"라면서도 "기성세대보다는 삶의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지 못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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