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26일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가 방화가 돼 난리가 난 일이 있었다. 당시 방화범을 즉각 체포하지는 못했으나 방화범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문구가 있어 한국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도 '한국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웠다'는 식의 보도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뒤늦게 알려진 진범은 한국어를 잘 아는 중국인 류창이었다. 당시 중국 대사관 등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류씨의 외증조부는 이승식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으로 평양에서 태어나 주로 대구에서 살았다. 그의 딸이자, 류씨의 외할머니는 이남영으로 1942년 일본군에 붙잡혀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고.
구체적으로 확인되진 않고 있지만, 류씨의 할아버지 역시 항일 신사군에서 연대장을 지낸던 항일 군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족사 때문인지 류씨는 한글을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 방화범이 류씨로 확정된 이후의 사태였다. 한중일 3국 간 외교적 파장을 예고했던 류씨의 신병 처리와 관련해 우리 법원이 중국에 인도할 것을 결정하면서 이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했던 것.
우리 법원은 류씨의 신병을 일본에 인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 사법당국이 야스쿠니 신사와 주한 일본대사관에 불을 지른 류씨를 '정치범'으로 인정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중국과 일본 양국은 우리 정부에 류씨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동시에 요구했다. 일본 측은 류씨가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혐의가 있는 만큼 한일간 범죄자인도조약에 따라 일본으로 넘겨달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중국은 범죄자인도조약 상 정치범일 경우 예외 조항을 근거로 들어 류씨를 정치범으로 대우할 것을 강력히 요청해왔다. 류씨의 신병문제가 중일 간 외교적 기싸움 양상으로 번지면서 우리 정부는 류씨의 신병 처리 문제를 두고 최근까지 고민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외교당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일본 어느쪽 손을 들어주든 다른 한 쪽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을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류씨 신병에 대한 관심은 일본 보다는 중국 사회에서 더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류씨가 일본의 과거사 부정에 분개해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항일 영웅'처럼 통하고 있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류씨의 신병이 일본으로 가는 경우 중국 인민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해 오기도 했다.
한편 류씨는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류씨는 주한일본대사관 화염병 투척으로 경찰조사를 받던 중 2011년 12월26일 일본 야스쿠니신사 출입구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하려 한 것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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