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4대 일간지'가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강제동원 문제 해결 노력에 주목하며 한국을 향한 '수출규제 해제'를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23일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22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언급하며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 속에서도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신문은 "걸리는 것은 일본 정부가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한국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겠지만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일본에도 큰 손실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태 타개를 위해 일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며 "우선 한국의 무역 관리 체제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3년 전 단행된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를 재검토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또 "극도로 악화된 국가 간의 관계를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개선하기 어렵다"며 "양국이 보조를 맞춰 움직일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도 지난 18일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인 일본도 마땅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며 기시다호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대 정권의 겸허한 태도를 재확인하고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해제하는 절차를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일본 언론의 이같은 보도는 일본 정부의 구체적인 움직임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한일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의미 있는 양자 접촉을 진행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일이 '물밑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갈등 사안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한다. 일본 언론의 보도도 '여론 조성' 내지는 여론의 온도를 재기 위한 것이라면서다.
정부는 일본 언론의 이같은 동향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지 않으며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그간 한일 양국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대일 외교협의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며 "다양한 계기를 통해 일본 측의 성의있는 호응을 계속 촉구해오고 있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당국자는 "앞으로도 국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가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과의 소통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2019년 7월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수출심사 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에서도 제외했다. 이는 2018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윤석열 정부는 자칫 한일관계의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는 일본 전범기업들에 대한 자산 매각 현실화가 현 정세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지난 7월 '강제동원 민관협의회'를 출범해 외교적 해법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동시에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을 요구하며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함도 강조해왔다. 지난 4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에게 '조치 철회'를 직접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하야시 외무상이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기시다호의 소극적 행보의 이유를 최근 급락하고 있는 지지율에서 찾기도 한다.
마이니치 신문이 사회조사연구센터와 공동으로 18세 이상 일본 유권자 965명을 대상으로 지난 20~21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기시다호의 지지율은 36%로 나타났다. 지난달 52%에서 무려 16%포인트(p) 급락한 것이다.
자민당 내 '기시다파'의 입김이 약한 가운데 보수층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기시다 총리의 입장에선 한일관계에 대한 전향적 선택을 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는 셈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는 한일관계가 좋았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입장에선 강제동원 문제가 진전이 없는 한 수출규제 철회만 따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이 전향적 카드로 호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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