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8일 새벽 서울의 경복궁에서는 한국 역사의 참극이 벌어진다. 일본군과 경찰, 낭인배 등이 경복궁에 쳐들어가 왕과 왕비가 머물고 있던 건청궁을 포위하고,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 근대사에서 처음으로 을미사변이라 불리는 항일의병이 봉기하는 계기가 된다. 이듬해 초에는 조선의 국왕 고종이 서울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사태(俄館播遷)까지 몰고 왔다. 후일 청년 김창수(후일의 백범 김구)가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군 밀정을 살해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된 것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사건에 대한 설욕에서 기인했다.
이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기록들이 존재한다. 한국정부 고문이었던 이시즈카 에이조가 기록한 에이조 보고서, 서울 주재 영국의 월터 힐리어경의 텍스트,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왕조실록,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수기, 최근 발견된 독일 후고 라돌린의 텍스트는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상이하게 해석한다.
러시아인 사바틴은 을미사변을 궁에서 본 유일한 외국인으로, ‘묘시까지 왕후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의 에이조 보고서에는 왕후를 찾아 죽였다라고 되어 있다. 최근 발견된 문서에서는 반대로, ‘러시아 주재 독일인이 러시아인에게 들은 바로는, 황후가 아직 살아 있다’고 밝힌다. 이 글에서 ‘고종은 명성황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시해사건이 일어난 3일 후, 고종은 죽은 명성황후를 폐위시킨다.
김기철 작가는 을미사변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제 각각의 해석한 다양한 언어의 글들을 사람의 목소리로 변형시킨다. 관객은 새까만 종이 판에 연필로 선을 그을 때 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가상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울려 퍼진다.
양지윤 큐레이터는 “이미 역사 속 이야기들이 잔뜩 새겨진 새까만 종이 판 위에 자신의 글을 덧입히는 행위를 하며, 진실이 묻혀진 역사서에 한 줄 더 긋는 덧없기도 한 행위로 치환된다”고 말했다. 우리들 개인의 삶은 역사적 진실이라 믿었던 무언가의 결과물이지만, 역사적 진실이란 가공의 기록물이며, 누군가의 권력에 의해 선별되고 뒤틀어진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을 중심으로 다른 한편에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조명을 받고 있다. 관객이 마이크에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라는 글씨는 갑자기 사라지며, 잠시 후 천천히 눕혀졌던 마음이란 글씨가 올라와서 조명에 비춰진다. 이는 사서삼경 중 대학이라는 글에 나오는 ‘심불재언’이라는 문구에서 영감 받은 것이다.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가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가 않고, 맛을 봐도 그 맛을 모른다’라는 뜻인 옛 명언은 내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살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역사라는 기록된 텍스트는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10간 12지의 60가지의 변수인 서클을 수직운동으로 바꾼 기계장치 <수직적인 동그라미>가 놓인다. 서서히 올라갔다 내려갔기를 반복하며 미세한 차이의 풍경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반복되는 수직운동 속에 관객은 탄성변형을 이루는 변곡점들 마저 역사의 큰 흐름에 속해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김기철의 개인전 <탄성변형>은 역사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관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소리갤러리가 일반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중적인 공간임을 고려하여, 마이크나 연필 같은 일상 속의 친숙한 인터페이스로 소리를 체험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이번 전시를 소개한다. 소리의 즐거움 이면에는 19세기 말 조선이 식민지 제국주의에 의해 사라지는 역사가 있다. 크든 작든 과거의 모든 사건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변곡점으로 작동하며 꺾이고 꺾여,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