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부터 먹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냉면. 역사 속 문헌 중에서 유난히 냉면에 관한 기록이 많은 왕이 바로 고종 황제다. 매일 밤 야참으로 냉면을 즐겨 드셨다고 하는 고종 황제. 과연 고종 황제는 어떤 냉면을 드셨을까? 맵고 짠 음식을 싫어했던 고종 황제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달고 시원한 ‘배동치미’라고 한다. 동치미를 담글 때부터 배를 넣어 달고 시원한 육수에 고명으로까지 배를 듬뿍 올려 만든 고종의 배동치미 냉면. 소리 나지 않게 먹어야 한다는 우리의 음식 예절과 달리 냉면만큼은 ‘후루룩~’ 빨리 먹어야 한다고 말했던 고종 황제의 불면증을 달랬던 배동치미를 재연해 본다.
유난히 배달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 그런데 1900년대 초 ‘냉면’을 배달한 ‘냉면 배달부’가 있었다고 한다.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없었던 시절, 불기 쉬운 냉면을 어떻게, 왜 배달했을까?
고증에 의하면, 1930년대 냉면 배달부들은 나무 목판 위에 냉면 열 그릇을 층층히 쌓아 들고 다른 한손엔 육수 주전자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배달했고, 그 모습이 가히 묘기를 부리듯 아슬아슬하여 지나가던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배달된 냉면은 주로 풍류를 즐기던 모던 보이와 기생들,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을 꺼려했던 양반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밤에 야참으로 먹었다고 전해진다.
냉면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함흥냉면. 그러나 정작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 한 새터민은 함흥냉면이란 말은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고 할 정도다. 그렇다면 함흥냉면의 시초는 어디인 것일까? 메밀이 주재료인 평양냉면과는 달리 함흥냉면은 감자 가루나 고구마 가루로 면을 만든 것이며 이북에서는 감자 가루로 만든 매콤한 면요리를 ‘농마국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함흥냉면이라는 말은 전쟁 이후 남한에서 인기를 끌던 ‘평양냉면’에 대응해서 만든 남한식 요리 이름이라는 것이다.
밀가루로 만들어 이름 붙여진 부산 밀면. 그런데, 이 밀면이 사실은 ‘냉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과연 밀면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부산 피난민 촌에서 60여년째 밀면을 팔고 있는 한 가게. ‘밀면’이 탄생되었다는 이곳은 함경도에서 냉면 가게를 하던 할머니가 피난을 온 후 먹고 살기 위해 냉면 가게를 열면서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이 가게에서는 당시 비싼 메밀 대신 구호용 물품으로 싸게 공급된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었다. 때문에 초기에는 ‘밀면’이라는 이름이 아닌 ‘밀냉면’이라고 불렀고, 이후 ‘부산 냉면’으로 불리다가 말이 줄여져 지금의 ‘밀면’이 되었다고 한다. 재료는 다르지만 냉면의 사촌 뻘로 탄생 된 ‘밀면’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우리는 보통 냉면으로 유명한 고장을 평양과 함흥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곳곳에는 숨겨진 냉면의 메카가 있으니 경상도의 진주냉면과 인천냉면, 백령도냉면이 바로 그것이다.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거 진주는 경남의 중심지였다. 때문에 양반들이나 먹을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인 냉면이 진주에서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진주냉면의 경우 진주의 지리적 특성상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해물 육수를 쓴다.
또한, 백령도의 냉면은 황해도 해주식 냉면이다. 이는 해주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아직도 조리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주식 냉면은 주로 돼지뼈로 육수를 내고 간장 대신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 특징이라니 냉면은 평양에서만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서 먹었던 우리의 전통 음식이었던 셈이다.
오랜 시간 우리나라 여름 음식의 대표 선수로 자리매김했던 ‘냉면’에 숨은 뒷이야기들은 오는 8월 5일(월) 밤 11시 20분 [MBC 다큐스페셜]을 통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