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패전으로 치닫고 있던 1944년 6월, 미중 연합군(Y군)은 ‘버마로드(Burma Road)’상의 일본군이 점령한 송산, 등충, 용릉 등을 공격했고, 9월 7일 송산을 점령했다.
이때 일본군 ‘위안부’로 있던 24명 중 10명이 생존해 미중 연합군의 포로로 잡혔고, 14명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거나 전투 과정에서 죽었다.
이 당시 모습을 담은 ‘위안부’ 사진은 세상에 공개돼 한국인 ‘위안부’의 참상을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특히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준비 과정에서 피해자 박영심(1993년 피해 증언, '06년 별세) 할머니가 사진 속 만삭의 여성이 자신이라고 스스로 밝히며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았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7년, 당시 사진 속 송산에 포로로 잡혀있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를 촬영한 18초짜리 흑백 영상이 발굴, 공개됐다.
그 동안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증언, 문서, 사진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실제 촬영된 영상이 공개되는 것은 세계 최초다.
영상 속에는 중국 송산에서 포로로 잡힌 한국인 위안부를 포함해 7명의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미중연합군 산하 제8군사령부 참모장교 신 카이(Shin Kai) 대위(중국군 장교)로 추정되는 남성은 한 명의 ‘위안부’ 여성과만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나머지 여성들은 초조하거나 두려운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
영상 속 장소는 미중연합군 제8군 사령부가 임시로 사용한 민가 건물로, 이곳에서 ‘위안부’ 포로 심문이 이루어졌다.
포로로 잡혔을 당시 만삭이었던 고(故) 박영심 할머니는 탈출 과정에서 사산해 중국군의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연구팀은 미군이 기록을 위해 사진과 영상을 담당하는 2인1조로 움직였던 점에 주목하고, 해당 사진을 촬영한 164통신대 배속 사진병을 오랜 기간 조사했다.
연구팀은 영상 속 인물들을 한국인 ‘위안부’로 입증할 수 있는 근거로 앞서 2000년 고(故) 박영심 할머니가 자신이라고 밝혔던 사진과 영상 속 인물들의 얼굴과 옷차림이 동일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강성현 교수(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이 영상의 존재에 대한 단서를 찾은 후 2년 동안 관련 정보를 모으고 추적했고, 서울시의 지원과 연구팀 및 현지 연구원인 김한상 박사(Rice University)의 활약이 더해져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자료를 일일이 찾고 열람해야 하는 과정이 한국에서 김서방을 찾는 일과 같아 쉽지는 않지만 더 늦기 전에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체계적 조사와 수집이 필요한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조사 발굴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또한 “이러한 불행한 역사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만큼 앞으로도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데 앞장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본 연구는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하면서 본 연구 관련 예산을 삭감해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의 지원을 받게 되어 이와 같은 성과를 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