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이겨낸 굳센 소녀로 잘 알려져있던 '달려라 하니'의 주인공 하니의 이미지는 사실 잘못된 것이었다.
하니네 집이 가난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니는 가난함에도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육상에 매진하는 굳센 소녀 이미지다.
하니의 라이벌 역할로 나오는 나애리는 하니가 전에 살던 집에 새로 이사오는 집 딸이다. 즉 나애리의 집은 원래 하니가 살던 집이다.
나애리의 집은 커다란 나무도 심을 수 있는 마당 딸린 2층짜리 단독주택인데 하니는 이 곳에서 부모님과 자신을 키워줬던 유모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엄마와 유모 할머니 둘다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면 하니는 넉넉한 가정에 살다가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가난해진 걸까?
아니다. 하니네가 집을 판 이유는 중동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그 큰 집에 엄마도 유모 할머니도 없이 홀로 딸이 쓸쓸하게 지낼까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또 중동 파견 근무가 끝나고 귀국하면 아내를 보낸 후 사랑에 빠진 유지애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하니랑 셋이서 살 더 큰 집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더 큰 집을 산다.
그렇다면 하니는 왜 흙수저, 가난한 캐릭터로 오해받게 됐을까.
중동으로 가기 전 아버지는 두번째 아내가 될 유지애에게 혼자 남은 하니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며 유지애의 아파트에서 같이 지낼 것을 부탁한다. 유지애는 전직 배우였기 때문에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모가 될 유지애를 워낙 싫어하는 하니는 유지애에게 반항하기 위해 좋은 아파트를 두고 혼자 나가서 옥탑방에서 지낸다. 이 때문에 가난한 이미지가 생겨났다.
또 '달려라 하니'에서 인물 설정과 이미지만 가져온 또다른 만화영화 '천방지축 하니'에서는 유지애가 등장하지 않으면서 부자라는 설정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달려라 하니' 속 중동 건설업자 아버지 역시 사라지고 선생님이었던 홍두깨가 의붓아버지가 됐다.
이후 두 만화를 사람들이 혼동하면서 하니는 가난한 이미지가 돼버렸다.
여기에 당시 유명했던 육상선수 임춘애와 이미지가 겹쳐버린 것도 한몫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임춘애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육상선수다.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그는 라면만 먹고 뛰지도 않았고 그가 한 말도 아니었다.
임춘애가 있던 학교 육상부 코치 김번일 씨는 열악한 환경을 이야기하다가 "지원이 부족해서 간식으로 라면만 먹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해당 기사를 낸 기자가 이를 왜곡해서 임춘애를 비롯한 육상부 선수들이 '삼시세끼 라면만 먹고 운동한다. 우유 마시는 친구들이 부럽다더라'고 기사를 쓴 것이 사실처럼 전달된 것이다.
이후 그 기자는 자기도 열악한 육상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좀 더 후원을 많이 받게 해주려고 인터뷰 내용을 과장했다고 털어놓았다.
임춘애는 2010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위와 같이 해명하며 "당시 체력보강을 위해 삼계탕에 도가니탕, 뱀탕까지 먹었는데 어떻게 라면만 먹고 뛰겠냐"고 말했지만 라면 소녀라는 타이틀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가난을 이겨내며 라면만 먹고 헝그리 정신으로 뛰었던 '라면소녀' 이미지가 너무 강해 만화 캐릭터인 하니에게도 이런 이미지가 씌워지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