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얼어붙은 한일관계 개선에 물꼬가 트일 것이란 기대가 일본의 강경한 자세로 인해 무산됐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먼저 가져와야 대화를 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확고히 했다.
1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현지시간으로 전날 영국 콘월에서 열린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국을 염두에 두고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 환경에는 없다"고 발언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해결됐으며, 한국 법원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 및 정부가 배상토록 명령한 것은 이에 배치되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스가 총리의 발언은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가 총리는 이어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의 움직임으로 한일 문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가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 정부가 법원 판결을 시정할 구체적인 해법을 먼저 내놓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그대로 반복한 셈이다.
G7 정상회의를 통해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무산됐다.
당초 외교가에서는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일 또는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정식 회담이 아닌 간략하고 비공식적인 '풀 어사이드'(pull aside) 회담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G7 정상회의 당일인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스가 총리를 만났지만 1분가량 조우해 인사한 것이 전부였다. 같은 날 만찬장에서도 인사가 전부였다.
한국이 먼저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는 일본의 강경한 의지만 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14일 페이스북에 "스가 총리와의 첫 대면은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1분 대면'은 양국이 관계 개선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점을 드러냈지만, 두 정상이 지난해 9월 스가 총리가 취임한 후로 9개월 만에 만났다는 사실도 한일관계가 얼어붙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는 일본 언론의 분석도 나왔다.
14일 일본 스포츠호치는 노다 요시히코 전 일본 총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다 전 총리 취임 20일 만에,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아베 전 총리와 문 대통령은 문 대통령 취임 2개월 만에 만났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스가 총리 취임 9개월 만에 만난 것은 '전후 최악'이라고 여겨지는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형태가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