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는 3대의 앰프 스피커가 각자의 소리를 냈다. 소녀상 가장 가까이에는 1504차 정기 수요시위를 진행하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스피커가 켜져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를 증언한 날(8월14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기림의 날'을 앞두고 정의연은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했다. 올해는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요시위 참석자들의 연이은 발언은 다른 2대의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노랫소리와 목소리들에 묻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수요시위 장소를 중심으로 경찰이 쳐놓은 울타리 너머로 수요시위 장소를 둘러싼 보수단체 회원들, 유튜버들은 소리 높여 '위안부는 가짜다'라는 주장을 내뱉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자체가 사실이 아니며 강제연행도 없었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짓으로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힘내라 힘, 싸워라 싸." 소녀상 오른편에 천막을 마련해둔 '자유연대'의 스피커에서는 수요시위가 시작되자 가수 정광태의 '힘내라 힘'이 큰소리로 흘러나왔다. 반대편 소녀상 왼편에서는 흰색 모자를 눌러쓴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로 정의연의 수요시위를 '성노예 팔이'라고 규탄했다. 그가 가지고 나온 무릎 높이의 스피커에는 발언 중간중간 일본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정의연 관계자들은 지난해 정의연의 회계부실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단체의 전임 대표인 윤미향 무소속 국회의원이 관련 혐의로 기소되면서 수요시위 주변에서 시위를 방해하거나 활동가들을 모욕하는 일이 빈번하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비난의 목소리는 정의연과 활동가들을 넘어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위안부'는 강제동원 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돈을 받고 일을 한 매춘부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김학순,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공격은 종종 피해자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지난 4월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국민행동)이라는 이름의 단체는 수요시위 장소 옆에서 '일본군 위안부 실상 왜곡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국민행동 측의 한 관계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분장을 하고 할머니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거짓말을 한 것이 미안하다'는 식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 할머니의 얼굴이 인쇄된 가면을 쓰고 이 할머니의 사투리를 흉내내면서 "저 이용수가 여러분들께 거짓말을 참 많이 했습니더. 제가 방송에 나와 가꼬 밤에 자는데 일본군이 내를 강제로 끌고 갔다고 이래 말한기는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더. 사람들이 저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그카면서 엄청스레 대우해줍디다만 사실 그게 일본군이 끌고 간 게 아닙니더"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 또한 '용수 할매 거짓말 이제그만' '거짓말 달인 이용수 대가 치를 것' '이용수 포주 따라 대만 갔잖아' 같은 내용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줄 곳 이 할머니가 거짓말을 해왔으며 '위안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은 초대 가수가 일본 밴드인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이토시노에리いとしのエリー, 사랑스러운엘리)를 부르며 끝났다.
이들은 이 할머니의 피해 증언 내용이 시간에 따라 달라짐을 지적하며 이 할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서 매춘 활동을 했음에도 강제 동원된 피해자인 양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식의 논리는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해 '위안부' 관련 연구들은 '성폭행 피해를 입은 고령의 여성에게 수십년 전의 기억을 완벽히 증언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이용수 할머니의 진술이 세부적인 면에서 달라진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로 끌려갔다는 증언의 기본 전제는 변한 것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과 모욕적인 글들이 여전히 게시되고 있었다. 한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가짜이며 매춘부일 뿐이라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올라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기사에도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댓글이 공공연하게 달리기도 했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그동안 다양한 공격이 있었지만) 가장 화가 나는 것은 할머니들을 '가짜 위안부다. 가짜로 끌려간 사람이다. 끌려간 증거가 있으면 내놔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할머니들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에 이어 일본군 '위안부' 사건의 상징물인 소녀상에 대한 공격도 줄을 이었다. 지난해 5월 서울 동작구에서 지하철 흑석역 주변에 설치된 소녀상을 돌로 내려쳐 손괴하고 이를 말리려는 환경미화원을 폭행한 30대 남성이 경찰이 붙잡혔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대구에서 2.28 기념 중앙공원에 설치된 소녀상에 접근해 씌워져 있던 마스크를 벗기고 조형물 장식을 바닥에 집어 던진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농성을 하며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의 민지원 부대표는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차량으로 돌진하려고 한 사례도 있었고 본인들이 들고 있었던 피켓을 던지려는 시늉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라며 "특히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여학생들을 피해자 할머니들에 빗대면서 입에 담기 힘든 성희롱과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말들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 부대표는 "이들은 할머니들을 '앵벌이, 사기꾼'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최근에 사망한 피해자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그동안의 피해 증언은 다 부정하고 매춘부라고 불렀다"라며 "구체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해온) 김학순, 이용수 등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인신 공격적인 말들을 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 역사 부정의 피해 사례가 늘어나자 국회에서도 이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 활동이 있었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일본군위안부 피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기존의 법보다 강하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해당 법안에는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으며 '위안부' 피해 실태와 관련한 증거들을 조작, 날조, 왜곡, 인멸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이 명시됐다.
다만 기존의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보다 처벌 수위를 높인 특별법 발의에 대해 현행법을 뛰어넘는 과도한 처벌 기준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 의원 측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며 "일본군 '위안부'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양 의원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다"라며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보호조치로 처벌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양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진상과 피해를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폄훼 방지를 위해 이 특별법이 꼭 제정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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