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김진아씨(가명·38)는 학창 시절 아이돌 그룹 H.O.T의 팬이었다. H.O.T는 '10대들의 승리'라는 뜻이다.
진아씨는 10대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된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대학시절엔 거대담론이나 학생운동과 거리를 뒀고 H.O.T 노랫말처럼 자신의 주인공이 된 삶을 목표로 삼았다.
◇"라떼는 말이야"
그러나 직장생활 14년차인 진아씨는 최근 한숨 쉬는 날이 늘었다. 팀 내 서열 두 번째인 그는 조직성과를 위해 업무의 방향성을 잡고 팀워크를 중시한다.
그러다 보면 90년대 이후 출생한 후배들을 혼내게 되는데 어느 날 부장이 그를 불러 훈수를 뒀다. "요즘 애들한테는 그러면 안된다. 칭찬하며 가르쳐라."
진아씨는 "'내가 잘못된 건가' '꼰대가 된 건가' 자괴감이 들었다"며 "제 또래까지 MZ세대로 포함됐지만 우리는 사실상 낀 세대"라고 하소연했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생인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생인 Z세대를 합친 말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앞자리에 있는 80년대 초·중반생들은 Z세대에게 '세대 차이'를 느낀다. 이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한데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패션업계 종사자 신아름씨(가명·39)는 후배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새삼 실감한다. 하루는 상사가 '오늘 예쁘다' '화장 잘 됐다'고 그에게 말했다. 아름씨는 대수롭게 않게 넘겼지만 후배들은 달랐다.
"'왜 그런 성적 농담을 받아주냐' '문제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하더군요. 저 신입사원 때는 충분히 넘어가는 발언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나 싶다가도 무엇이 맞는지 혼란스럽더군요."
◇"꼰대 프레임이 두렵다"
국내외 명문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한 정효원씨(가명·38)는 2010년대 초반 벤처업계 '젊은 피'로 꼽혔다. 그의 벤처기업은 현재 중앙부처와 사업을 논의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사업 협상보다 20대 인턴 사원들이 더 어렵다는 게 효원씨의 말이다.
"저때만 해도 반말을 해야 친해진다고 인식했죠. 요즘 그랬다간 큰일 납니다. 문제는 제 선배 세대의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그분들은 지금도 제게 '님'자를 붙이지 않아요. 저부터 변하자는 생각으로 인턴사원들에게 '님' 자를 붙이지만 '중간에 내가 끼었구나'는 생각이 들죠."
진아·아름·효원씨처럼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여성들은 유리천장에 맞서 업계 필수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는 그들을 '엘리트 여성'이라 부르지만 '꼰대 부정 여론'에 불통이 튈까 조직 내에서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꼰대란 관습·관행에 매몰돼 고집만 부리고 말이 안 통하는 상사·선배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멘토' 역할까지 하는 상사·선배까지 싸잡아 꼰대라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견기업의 중간관리자인 민지혜씨(가명·36)는 후배들을 질책할 때마다 꼰대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결국 지혜씨는 스스로 '꼰대'라고 인정했고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회사의 공동 이익을 위해 혼내는 건데 꼰대 소리 때문에 주저하면 안 되죠. 물론 사익을 위해 후배를 꾸짖으면 그건 진짜 '꼰대'일 것입니다. '꼰대' 피하려다 '멘토' 놓친다는 말에 저는 크게 공감해요."
지혜씨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위도 아래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며 "두 집단 간 소통의 윤활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규정했다"고 했다.
◇유리천장도 여전
2018년 '미투 운동'(나도 당했다)을 비롯해 여성 대상 억압·차별·범죄 해소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여성의 근무환경은 일정 부분 개선됐다.
이를테면 진아씨는 입사 초인 2010년 전만 해도 출산 휴가 후 곧바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은 꿈도 못 꿨다. 그랬다간 한직으로 밀려나는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는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을 연달아 쓰는 일이 당연시됐다. 그럼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계를 경험해야 하는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진아씨는 "남편보다 수익이 많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나는 아이 교육·집안 살림 부담까지 느끼고 있다"며 "가정에 집중하다가 일을 놓치면 커리어는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주요 업무는 남성에게 맡기는 조직 문화는 지금도 있다"며 "남성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야 유리천장을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선 앞둔 여야 후보들이 MZ세대 표심 공략에 나선 가운데 'MZ세대 안 세대 갈등'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느 세대든 젊음의 정점에 있을 때 혁신적으로 불리지만 저출산·취업난이 맞물리면서 MZ세대는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문제는 (80년대 초·중반생처럼) 세대 전환기에 있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면 MZ세대 안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기에 젠더와 양성평등은 중요한 이슈로 작용하기 때문에 세대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간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여성 외모 칭찬 왜 받아주세요"…위아래 '낀' 밀레니얼의 한숨
대기업에 다니는 김진아씨(가명·38)는 학창 시절 아이돌 그룹 H.O.T의 팬이었다. H.O.T는 '10대들의 승리'라는 뜻이다.
진아씨는 10대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된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대학시절엔 거대담론이나 학생운동과 거리를 뒀고 H.O.T 노랫말처럼 자신의 주인공이 된 삶을 목표로 삼았다.
◇"라떼는 말이야"
그러나 직장생활 14년차인 진아씨는 최근 한숨 쉬는 날이 늘었다. 팀 내 서열 두 번째인 그는 조직성과를 위해 업무의 방향성을 잡고 팀워크를 중시한다.
그러다 보면 90년대 이후 출생한 후배들을 혼내게 되는데 어느 날 부장이 그를 불러 훈수를 뒀다. "요즘 애들한테는 그러면 안된다. 칭찬하며 가르쳐라."
진아씨는 "'내가 잘못된 건가' '꼰대가 된 건가' 자괴감이 들었다"며 "제 또래까지 MZ세대로 포함됐지만 우리는 사실상 낀 세대"라고 하소연했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생인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생인 Z세대를 합친 말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앞자리에 있는 80년대 초·중반생들은 Z세대에게 '세대 차이'를 느낀다. 이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한데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패션업계 종사자 신아름씨(가명·39)는 후배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새삼 실감한다. 하루는 상사가 '오늘 예쁘다' '화장 잘 됐다'고 그에게 말했다. 아름씨는 대수롭게 않게 넘겼지만 후배들은 달랐다.
"'왜 그런 성적 농담을 받아주냐' '문제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하더군요. 저 신입사원 때는 충분히 넘어가는 발언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나 싶다가도 무엇이 맞는지 혼란스럽더군요."
◇"꼰대 프레임이 두렵다"
국내외 명문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한 정효원씨(가명·38)는 2010년대 초반 벤처업계 '젊은 피'로 꼽혔다. 그의 벤처기업은 현재 중앙부처와 사업을 논의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사업 협상보다 20대 인턴 사원들이 더 어렵다는 게 효원씨의 말이다.
"저때만 해도 반말을 해야 친해진다고 인식했죠. 요즘 그랬다간 큰일 납니다. 문제는 제 선배 세대의 인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그분들은 지금도 제게 '님'자를 붙이지 않아요. 저부터 변하자는 생각으로 인턴사원들에게 '님' 자를 붙이지만 '중간에 내가 끼었구나'는 생각이 들죠."
진아·아름·효원씨처럼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여성들은 유리천장에 맞서 업계 필수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는 그들을 '엘리트 여성'이라 부르지만 '꼰대 부정 여론'에 불통이 튈까 조직 내에서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꼰대란 관습·관행에 매몰돼 고집만 부리고 말이 안 통하는 상사·선배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멘토' 역할까지 하는 상사·선배까지 싸잡아 꼰대라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견기업의 중간관리자인 민지혜씨(가명·36)는 후배들을 질책할 때마다 꼰대로 낙인찍힐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결국 지혜씨는 스스로 '꼰대'라고 인정했고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회사의 공동 이익을 위해 혼내는 건데 꼰대 소리 때문에 주저하면 안 되죠. 물론 사익을 위해 후배를 꾸짖으면 그건 진짜 '꼰대'일 것입니다. '꼰대' 피하려다 '멘토' 놓친다는 말에 저는 크게 공감해요."
지혜씨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위도 아래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며 "두 집단 간 소통의 윤활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규정했다"고 했다.
◇유리천장도 여전
2018년 '미투 운동'(나도 당했다)을 비롯해 여성 대상 억압·차별·범죄 해소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여성의 근무환경은 일정 부분 개선됐다.
이를테면 진아씨는 입사 초인 2010년 전만 해도 출산 휴가 후 곧바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은 꿈도 못 꿨다. 그랬다간 한직으로 밀려나는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는 출산 휴가와 육아휴직을 연달아 쓰는 일이 당연시됐다. 그럼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계를 경험해야 하는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진아씨는 "남편보다 수익이 많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나는 아이 교육·집안 살림 부담까지 느끼고 있다"며 "가정에 집중하다가 일을 놓치면 커리어는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주요 업무는 남성에게 맡기는 조직 문화는 지금도 있다"며 "남성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야 유리천장을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선 앞둔 여야 후보들이 MZ세대 표심 공략에 나선 가운데 'MZ세대 안 세대 갈등'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느 세대든 젊음의 정점에 있을 때 혁신적으로 불리지만 저출산·취업난이 맞물리면서 MZ세대는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문제는 (80년대 초·중반생처럼) 세대 전환기에 있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면 MZ세대 안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기에 젠더와 양성평등은 중요한 이슈로 작용하기 때문에 세대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간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사진] tvN 미생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