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오픈카를 빌린 뒤 음주운전을 하다 급정거해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던 연인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음주운전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을 뿐 살인 혐의는 무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6일 오전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살인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34·경기)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먼저 A씨에게 적용된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와 40시간의 준법운전강의 수강을 명했다.
재판부는 살인 혐의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검찰이 제시한 간접증거 만으로는 살인에 관한 점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은 술에 취한 상태로 과속하며 위험하게 운전하다 생명을 앗아가는 참혹한 교통사고를 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이 부분과 관련해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재판부는 이날 공판 말미 이번 사건을 치사 혐의로 심리하지 못한 데 대해 "당초 증거조사를 하기 전 검찰에 예비적 공소사실로 위험운전 치사 혐의를 추가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으나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법원은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 측 변호인은 공판 직후 취재진과 만나 "검찰과 함께 피고인의 혐의를 치사로 변경해 항소심을 진행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과 함께 있던 유족인 피해자의 언니 역시 살인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이번 1심 판결에 상당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 검찰 관계자는 "증거관계와 법리를 엄정히 검토해 살인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면서 "판결이유를 면밀히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반면 피고인은 공판 직후 가족과 함께 말 없이 법원을 빠져나갔다.
피고인의 어머니 역시 급하게 자리를 피했지만 "죽은 피해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아들은)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짧게 답했다.
한편 A씨는 2019년 11월10일 오전 1시쯤 제주시 한림읍의 한 도로에서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 알코올 농도 0.118%의 만취 상태로 렌터카인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오픈카)을 몰다 도로 오른쪽에 있던 연석과 돌담, 경운기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조수석에 있었던 B씨는 이 사고 충격으로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가면서 머리 등을 크게 다쳐 끝내 지난해 8월 의식불명 상태에서 사망했다.
이후 경찰은 A씨에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나, 검찰은 A씨에게 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해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B씨가 A씨의 이별 요구를 거절해 온 점, 사고 전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이 울린 점, 사고 19초 전 A씨가 '안전벨트 안 했네?'라고 묻자 B씨가 '응'이라고 대답한 점, 사고 5초 전 A씨가 가속페달을 밟아 시속 114㎞까지 속도를 올린 점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A씨 측은 두 사람이 만난 지 300일을 기념해 제주여행을 한 점, 라면을 먹고 싶다는 피해자의 말에 피고인이 운전하게 된 점, 피고인이 사고 전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튼 점 등을 들어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맞섰다.
[사진] SB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