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를 입고 무대에 서는 일이 쉽진 않았어요. 등에 60cm가 넘는 흉터를 가진 채로요.”
미국 메릴랜드주 맨체스터 출신의 빅토리아 그레이엄(22)은 미인대회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환한 미소와 늘씬한 몸매. 올해의 ‘미스 프로스버그’로 뽑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영국 BBC는 28일(현지시간) 희귀질환을 딛고 삶을 개척해가는 빅토리아의 사연을 소개했다.
언뜻 보면 여느 미인대회 참가자와 다를 바 없는 빅토리아는 선천적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EDS)을 앓고 있다. 피부와 뼈 등을 지탱하는 결합조직이 약해져 쉽게 멍이 들고 관절이 과하게 움직이는 희귀병이다. 결합조직은 모든 내장기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할 경우 장기가 저절로 파열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빅토리아는 EDS 판정을 받기까지 3년간 수많은 의사를 만나야 했다. 자신이 왜 그렇게 자주 다치는지, 관절이 왜 그토록 유연했는지 13세가 돼서야 알 수 있었다. 빅토리아는 “정말 이상했다. 치료법이 없는 병인데, 마침내 병명을 알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황홀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상태를 알면서도 빅토리아는 평범하게 생활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언짢은 시선을 보내곤 했다. 장애인용 주차 패스를 사용하다 사람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은 다반사였다.
“19세에 학교를 그만두기 전까지 주위에 제 상태를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병을 알리는 과정이 저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도울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빅토리아는 2014년부터 2년 동안 뇌와 척수에 10번 이상 수술을 받았다. 척추가 제멋대로 탈골되곤 했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길게 이어진 거대한 흉터가 남았다. 2시간마다 통증을 완화하고 몸의 기능을 바로잡아주는 약을 20~25정씩 먹어야 했다. 그래도 빅토리아는 새로운 꿈을 꿨다.
미인대회 참가는 수술 직후 만든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빅토리아는 대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병을 밝혔고, 지역 타이틀인 ‘미스 프로스버그’를 차지했다. 빅토리아의 SNS에는 왕관을 쓴 채 ‘나는 보이지 않는 병을 갖고 있어요’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다.
빅토리아는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덕에 어린 EDS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비영리단체인 EDS 지원 단체도 운영 중이다. 빅토리아의 목표는 글로벌 EDS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쉽지 않았다”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어리고 학위도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다면 제가 그 ‘누군가’가 될 겁니다.”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빙글, BBC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