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돈을 죄책감 없이 빼돌릴 수 있을까?
회삿돈 614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은행 직원 A씨와 그의 동생 B씨가 모두 구속됐다. 지난 4월 30일 A씨에게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데 이어 1일 열린 동생 B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 진행됐고 허정인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라면서 B씨를 구속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두 사람을 조사하고 있었다. A씨는 우리은행 직원으로 기업매각 자금을 담당하던 차장급 직원이었다. 심지어 10년 이상 해당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614억원을 개인 계좌로 인출했다.
A씨가 빼돌린 자금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무산에 따른 계약금 일부였다. 우리은행은 과거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주관했지만 계약 파기로 계약금 일부가 몰수됐다. 이 때 매각 과정 중에 이란과 우리 정부가 소송에 휘말렸고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 매각에 참여했던 이란 엔텍합이 계약이 파기되자 소송을 걸었던 것.
A씨가 빼돌린 돈은 원래 우리 정부가 이란에 지급해야 하는 배상금 중 일부다. 하지만 이란 제재로 국제 송금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지급이 지연됐고 우리은행 계좌에 공탁자금으로 보관돼 있었다. 이 돈을 빼돌린 것. 그러다가 올해 1월 배상금 지급이 가능해지게 되면서 계좌에 구멍이 난 사실이 발견됐다.
돈을 빼돌린 것은 A씨지만 B씨 또한 공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B씨가 A씨가 빼돌린 돈 가운데 일부인 80억원 가량을 해외 골프장 개발 사업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기 때문.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횡령금 가운데 500억원 가량을 A씨가 썼고 100억원 가량을 B씨가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말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우리은행은 A씨가 횡령한 사실을 내부감사 결과 뒤늦게 파악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A씨 또한 경찰에 직접 찾아가 자수했다.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했고 공범으로 지목된 A씨의 친동생 B씨를 28일 검거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또다른 의혹도 있다. A씨가 사전에 은행의 내부감사 사실을 파악한 다음 해외로 돈을 빼돌리려고 했다는 것. A씨는 경찰에 자수하기 전 두 차례에 걸쳐 수천만원 가량을 아내와 딸이 거주하는 호주에 송금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이 이를 사전에 파악하고 호주계 금융기관에 송금 취소를 요청하면서 거래가 불발됐다.
현재 이 사건은 점차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은행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임직원과 은행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 횡령 사실을 알아내지 못한 금융감독원 직원 등이 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A씨와 B씨는 "횡령금 대부분을 주식, 선물 투자나 사업 자금으로 사용했다"라면서 "현재 남은 돈이 거의 없다"라고 진술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