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대한 열정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82세 고령의 은퇴 만화가가 5년째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 루리웹의 '창작만화 게시판'은 아마추어 웹툰 작가들의 요람이다. 마사토끼·현욱·문택수 등의 작가가 이 곳을 거쳐 작가로 등용했고, 이말년·귀귀 등의 작가도 아마추어 시절에는 이 곳에 연재를 하기도 했다.
13일 루리웹 '만지소'에는 감동적인 사연이 올라왔다. '만화 지망생 소모임'을 뜻하는 이 곳은 프로 작가 데뷔를 꿈꾸는 아마추어들이 모인 공간이다.
루리웹 이용자 'megamachine'은 이날 이 곳에 5년째 연재 중인 웹툰 '외뿔도깨비'의 연재 비화를 공개했다. 이 웹툰은 그동안 이 이용자가 업로드하고 있었다.
'megamachine'은 "연재를 하고 있는 것은 올해 82세인 내 아버지로, 오래 전에 박삼 또는 박천으로 작가 활동을 하셨다. 첫 업데이트 당시 게시판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풍의 만화이기 때문에 악플이 달리지 않을까 싶어 애매하게 소개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박천 작가는 애니메이션, 만화가를 거쳐 만화단행본 출판사에서 기획실장을 역임했다. 한국만화가 협회에 박삼천 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박 작가가 '외뿔도깨비' 연재를 시작한 것은 아들의 권유 덕분이었다.
은퇴 뒤 10년 가까이 그림을 놓은 모습이 안타까워, "요즘에는 '웹툰'이라는 인터넷에 올리는 만화가 붐이다. 출판사 또는 인쇄 과정 없이 개인이 직접 인터넷에 만화를 올려 전파합니다"라며 웹툰 창작을 권유한 것이다.
고령인 박 작가는 펜과 잉크 대신 사인펜과 매직으로 작업을 해왔다.
4년 넘게 창작열을 불태우던 박 작가는 지난해 11월 갑자기 건강상의 이유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에 'megamachine'은 미뤄두고 있던 단행본 제작 작업을 진행,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외뿔도깨비' 1권 단행본을 만들어 선물했다.
공개된 단행본은 박 작가가 한창 활동 중이었을 법한 1970~80년대 작품을 연상 시키는 정감 넘치는 디자인과 구성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책 표지 안쪽에는 '글/그림 박천 만화가. 1934년생, 루리웹 창작만화 게시판에 2010년부터 연재중'이라는 문구와 함께 만화를 그리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글쓴이는 단행본을 받아 든 아버지의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 속 박 작가는 단행본을 받아 들고 책장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만화 작가를 꿈꾸다 꿈을 포기했다는 아들은 "지금 만화 작업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는 소감을 적었다.
박 작가는 아들에게 "내 만화 많이 보냐?"라며 묻는다고 한다. 글쓴이는 "예, 지난편은 300~400명 정도가 보고 갔어요"라고 대답한다고. 글쓴이는 "다른 작품에 비해 낮은 조회수지만 악플 없이 보고 가시는 (독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덧붙였다.
'megamachine'은 소량 출판이 가능한 사이트(☞링크)에 '외뿔도깨비' 단행본을 등록해 독자들이 구매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소량 출판 방식이라 가격은 비싸지만 아버지에게는 더 없는 선물일 듯하다.
외뿔도깨비는 1980년대 박 작가의 히트작 명랑 만화였다. 박 작가는 이 작품이 자신의 유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 ⓒ megamachine.net·루리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