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막을 내린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중국 내 스타는 단연 에일린 구(19·중국명 구아이링)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된 구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이름을 딴 상표 등록만 수십 건에 이르렀고 광고 계약 금액은 수백억 원에 이르렀다. 중국인들은 화려한 외모와 실력에 스타성까지 갖춘 그에게 열광했고 올림픽 기간 내내 그의 이름은 중국 내 각종 포털사이트에 도배됐다.
다른 메달리스트들이 많았음에도 구가 특히나 열풍을 일으킨 데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시민권자로 지난 2019년까지 미국 대표팀이었던 구가 그해 6월 어머니의 모국인 중국 대표팀을 선택하자 중국인들이 그를 애국자로 치켜세운 것이다.
더욱이 구가 중국 문화에 친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유창한 중국어까지 소화하자 그는 일순간 중국 스포츠 애국심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이는 구가 금메달을 따자 중국 관영 언론들이 "인민의 승리"라고 자축한 대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로 구는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의 대내외 메시지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개회식 당일 시진핑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열어 친밀감을 드러내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또 장기화되고 있는 미중 분쟁 가운데 애국주의로 내부 단결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강하게 선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중국으로 국적을 옮겨 세계 정상에 서고 중국인들에게 자긍심까지 안긴 구는 더할 나위 없는 히트 상품이었다.
아울러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스포츠 강국이라는 이미지도 다시 한번 각인시키려 했는데 실제로 중국(금메달 9개)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기준으로 미국(8개)을 제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따낸 구는 여기에서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중국이 구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노출되지 않았다.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는데 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댓글 하나가 문제였다. 중국 정부는 '만리방화벽'이라는 시스템으로 인스타그램은 물론, 유튜브, 구글 등을 차단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구의 인스타그램에 한 네티즌이 “중국 본토에 있는 수백만 명은 방화벽에 막혀 있는데 왜 당신만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수 있느냐”, “당신만 이런 특혜를 누리는 건 불공평하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구는 "누구나 앱 스토어에서 무료로 VPN(가상 사설망)을 내려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구가 아이피(IP) 우회 접속으로 누구나 인스타그램을 사용할 수 있다고 답한 것인데 중국 공산당은 중국인들의 VPN 사용이 늘어나자 이마저도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네티즌과 구의 대화 내용은 곧 삭제되고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당국과 구를 옹호했지만 일부에선 분노 섞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경제 대국과 방역, 미국과도 맞설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는데 구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면, 구를 통해서 중국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이중적인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오로지 올림픽을 위한 애국주의와 폐쇄성의 위험은 같은 미국 영입 선수인 주이(20)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올림픽 여자 피겨 단체전에 나선 주이 역시 구와 같은 해외 인재였지만 경기 중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적 망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은 구가 좋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면 똑같이 적용됐을 수 있다. 더욱이 성폭행 폭로 이후 이번 올림픽 전면에 나서며 누가 봐도 기획된 연출 아래 움직인 펑솨이를 고려하면 중국의 폐쇄성과 위험한 애국주의의 그늘이 더욱더 도드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