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많은 사람들이 무명인 박지성을 히딩크가 찾아냈다고 알고 있다.
히딩크가 아니었으면, 박지성은 지금과 같은 축구계의 빅스타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그러나
박지성이 축구 선수로서 엘리트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와 관련해 '알럽사커'의 '빈지노사생팬'이 올린 한 게시글을 참조해 썰을 풀어본다. (원문보기)
먼저 그의 성장사를 살펴보자.
박지성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 차범근 축구상(장려상)을 받았던 축구 꿈나무.
차범근 축구상은 아무나 받는 상이 아니다. 지금도 꼬장꼬장한 이 분이 당시 이 상을 줄만한 축구 꿈나무는 이미 그 성장성을 검증받았던 것.
박지성 외에도 이동국(1992년 장려상) 최태욱(1994년 대상) 김두현(1995년 대상) 이상호(2000년 대상) 기성용(2001년 대상) 등이 대표적인 차범근 축구상 출신들.
그리고 대한선수 시절 허정무 감독은 박지성을 픽업해 올림픽대표 선수와 A매치에 그를 데뷔 시켰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그를 픽업할 때 박이 보여줬던 레전드급 플레이는 축구계의 유명한 전설.
그 후 일본의 J리그에서 그를 주목했었고 여러 팀들이 박지성과 교섭을 벌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교토행을 확정했을 때 그의 연봉은 5억이었다.
이 몸값의 수준은 당시 홍명보가 7억. 윤정환이 4억5천, 그리고 이천수가 1억을 제시받았던 가격과 비교하면 그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되는 수치.
결국 그는 교토에 진출한 뒤, 2001년 J2리그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1부리그로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했고, 2002년 1부리그에 올라와서는 팀을 일왕배 우승까지 이끌었다.
교토에서 박지성은 그야말로 전설이자 영웅이고 맨유에서 뛰는 박에 대해 교토 팬들은 자신들의 자랑거리로 여길 정도.
오죽하면, 구단(교토 상가 FC)에서는 박지성이 절름발이로 돌아온다고 해도 영입하겠다는 입장.
당연히, K리그는 박지성을 잡고 싶었지만 당시 K리그 최고액 연봉은 3억 수준(김도훈)이었고 그를 영입하고자 해도 할 수가 없었던 상황.
따라서 무명의 축구선수를 히딩크가 픽업해 일약 스타플레이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신데렐라' 식의 스토리는 부풀려진 것이다.
결국 히딩크는 아시아의 박지성을 맨유의 박지성으로 키운 공로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야기. 물론 그것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