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는 가장 큰 주제일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고민하고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왔습니다. 필자 역시 컨설팅을 하던 시절 미래예측 모델에 대해 수십개의 모형을 숙지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익혔습니다. 보기엔 참 그럴 듯 하지만 글쎄요...
현재까지의 과학적 성과를 토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컴퓨터 산업이 생겨나면서 발전했던 복잡계 이론이 밝혀낸 하나의 사실은 매우 유명합니다. 즉, 아주 사소한 변수가 실제로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결코 예측 모델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죠.
모델이라는 것 자체가 사소한 변수를 제거하고 굵직한 변수만으로 구성하는 것인데, 북경의 나비까지 허리케인 발생 모델에 포함시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래 예측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어찌보면 충격적인 결론입니다.
더 많은 계산을 할 수 있는 세계에 이르러 알게 된 것이 더 정교한 예측같은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반대로 모든 것들이 영향을 주는 아주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인 석학들이나 연구소들이 내놓은 미래에 대한 예측 내용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복잡계 이론에 근거해 얘기하자면, 이런 결과는 '랜덤'한 결과입니다. 즉,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었던 예측이라는 것이죠. 맞았기 때문에 대단해보이지만, 계속 맞추는 사람도, 기관도 없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필자가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행위의 의미는 미래를 맞추느냐 못맞추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사실은 미래에 펼쳐질 상황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서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이유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과 불안정성, 그리고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의 안정감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 통제력은 미래를 맞추느냐 못맞추느냐보다는 미래에 펼쳐질 상황에 대해 관여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얼마큼 되느냐의 이슈입니다.
예를 들어, 한반도가 2020년에 통일된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정확히 예상한다고 해서(예측이 직업이라면 조금 다른 얘기겠지만) 그 사람이 통일된 한반도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면 이런 예측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뭐가 된다 안된다를 맞추는 것보다는 그것이 펼쳐지는 미래 상황에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왜 그런한가하면, 그 지식의 양과 질이 높을 수록 미래에 대한 관여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왜 관여도가 높아질까요? 지식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시점에서 칼 포퍼가 남긴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to predict the wheel is to invent it"
(수레를 예견한다는건 그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수레를 예견한다는 건 그만큼 수레에 대해 잘 안다는 의미죠. 그리고 그 지식이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힘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쯤되면 쓸데없는 미래예측 놀이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됩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자 한다면 현재에 필요한 많은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그 지식만이 미래를 대비하고 창조할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