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간) 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공동성명에 '중국'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정상은 이번 성명에서 '대만' '남중국해' '쿼드' 등 중국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역내 현안들을 하나둘 언급하면서 사실상 '중국 견제'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회담 뒤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보다 강력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다행스럽게도' 그런 압박은 없었다"면서도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양안(중국·대만)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한미) 양국이 함께 협력해가기로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외국 정부가 양안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걸 '내정간섭'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번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엔 문 대통령의 설명대로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관련 언급이 담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그간 미중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왔던 우리 정부의 '무게추'가 어느덧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단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서도 "대만해협의 평화·안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련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혔었다.
해당 문구 때문에 당시 '중일관계가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나왔던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우리 정부도 중국 당국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 이번 공동성명엔 중국 당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문제도 거론됐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우린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의 평화·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공동성명에서 "한미는 규범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거나 저해·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며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전략은 중국의 역내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미 정부의 대(對)아시아(중국) 정책이다.
이번 한미정상들의 공동성명엔 미국의 FOIP 전략과 우리나라의 신남방정책 간 연계·협력에 관한 내용과 더불어 "한미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중심성과 아세안 주도 지역구조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 또한 동남아 주요국들이 남중국해 및 일대 도서지역의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국 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 실행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협의체 관한 내용이 이번 공동성명에 포함된 사실 역시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한미는)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미국으로부터의 쿼드 가입 제의는 부인하면서도 "투명성·개방성·포용성 등 조건이 갖춰진 어떤 협력체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따라서 이번 공동성명 내용은 우리 정부가 쿼드를 사실상 협력 대상으로 명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중관계를 고려해 쿼드와의 '거리두기'를 해왔던 작년 말~올해 초 상황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및 기후변화 대응 등의 분야에서 쿼드와 부분적으로 협력해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한미 간의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 협력은 물론, 심지어 한미미사일지침 '완전 해제'까지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여태껏 내놓은 중국 관련 메시지 중에서 이번 공동성명이 가장 강경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중국 측이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관련해 우리 측에 노골적으로 반발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며 "너무 강한 반발은 한미 양국이 더 밀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