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정부·기관의 사업을 도왔던 현지인 조력자들과 함께 귀국한 김일응 주아프간대사관 공사참사관이 탈출 당시 힘들었던 상황을 회상하면서 울컥했다.
김 참사관은 27일 이뤄진 외교부 출입기자단과의 화상인터뷰에서 "(아프간인) 조력자들을 태운 버스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카불(아프간 수도)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탈레반(이슬람 무장조직)이 공항 정문 앞에서 통과를 안 시켜줘 14~15시간 버스 안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며 "탈레반이 조력자들이 소유한 여행증명서가 사본이라면서 시비를 걸었다"고 말했다.
현재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카불 공항은 미군 통제 하에 있지만, 공항 밖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탈레반이 관리하고 있어 당시 공항 진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게 김 참사관의 설명이다.
아프간 조력자들의 국내 이송을 위해 현지에 파견된 우리 공관원들은 이 같은 탈레반의 통제 속에 '아프간 탈출'을 시도하는 다른 현지인들까지 모여들면서 공항 진입이 어려워지자 미군 측의 협조를 구했고, 미군과 거래하던 아프간 버스회사들의 전세 버스 6대를 대절해 겨우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에 김 참사관은 공항에서 이들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전화를 통해 소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초 24일 오후 3시30분쯤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버스는 15시간이 지나도록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탈레반이 공항 인근 검문소에서 이들 버스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당시 버스에 탄 아프간인 조력자들이 소지한 우리 외교부 발급 여행증명서가 '원본'이 아닌 '사본'이란 이유로 공항 진입을 막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 참사관이 직접 "원본 증명서를 갖고 나가겠다"고 했고, 탈레반 측은 그제야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며 아프간인 조력자들이 탄 버스의 공항 내 진입을 허가했다고 김 참사관이 전했다.
김 참사관은 인터뷰에서 "25일 새벽에 조력자들을 태운 버스들이 들어왔다. 14시간 동안 버스에 갇혀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사색이 돼 내려오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공관원들이 아프간인 조력자들의 공항 진입 때 버스를 이용한 건 공항 주변에 몰려든 아프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위험'과도 무관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의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카볼 공항 남동부 애비게이트는 우리 정부가 국내 이송을 결정한 아프간인 가운데 26명이 23일 도보로 진입했던 곳이었다.
김 참사관에 따르면 카불 공항에선 탈레반이 각 게이트에 몰려든 아프간인들을 향해 채찍질하며 쫓아내는 광경도 펼쳐졌다고 한다.
김 참사관은 이번 아프간인 조력자 이송과 관련해 카불 공항에서 한 아프간인을 껴안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언론에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참사관은 앞서 현지 우리 공관원 철수 명령에 따라 인근 카타르 수도 도하의 임시 공관으로 옮겼다가 아프간인 이송을 위해 지난 22일 선발대와 함께 아프간에 재입국했다.
김 참사관은 우리 공관원 철수 당시 대사관에서 함께 일했던 현지인에게 '아프간에서 꼭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이번 이송 작전을 통해 그 약속을 지켰다.
김 참사관은 관심을 모았던 사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다른 친구들도 (다사 만나) 반가워서 포옹했는데, (사진에 찍힌) 그 친구가 유난히 얼굴이 상해 마음이 아팠다"고 답했다.
김 참사관은 이번 아프간인 이송 임무를 수행하면서 두 딸에겐 "걱정할까봐" 미처 얘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딸들이) 뉴스를 보곤 '아빠, 카불 다녀왔냐'고 따졌다"면서 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김 참사관은 우리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편으로 국내 이송이 결정된 아프간인 390명 가운데 377명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수송기에 탄 아프간인들이 심리적으로 의지하고 지지할 대상이 필요했다"며 "김 참사관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사진] 외교부 제공